🌿 5월의 탄생화, 은방울꽃과 작약
— 순결과 부끄러운 사랑, 초록이 짙어지는 계절의 두 얼굴
5월은 가정의 달, 사랑의 달이라고 불립니다.
햇살이 부드럽고, 꽃과 나무가 가장 왕성하게 자라나는 이 시기에는 자연도 사람도 생동감이 가득합니다.
이 따뜻하고 싱그러운 계절을 닮은 두 송이의 꽃이 있습니다.
하나는 맑고 조용한 종소리처럼 피어나는 ‘은방울꽃’,
또 하나는 **화려한 자태 속 수줍음을 품은 ‘작약’**입니다.
오늘은 5월의 탄생화, 은방울꽃과 작약에 얽힌 설화, 꽃말, 그리고 감성적 의미를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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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방울꽃 (Lily of the Valley)
꽃말: 다시 찾은 행복, 순결, 겸손, 감사
▣ 천국의 눈물에서 태어난 꽃
은방울꽃은 작고 종처럼 생긴 하얀 꽃송이들이 줄줄이 달려 있어 그 이름처럼 “은빛 종소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모습에 어울리게, 은방울꽃에는 천상의 이야기 하나가 전해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십자가를 보며 흘린 눈물이 땅에 떨어져 꽃으로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은방울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은방울꽃을 **‘성모 마리아의 눈물’**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는 단순히 슬픔의 꽃이 아니라, 희생과 사랑, 그리고 고요한 회복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또 다른 설화에서는, 성스러운 천사가 인간 세상에서 잃어버린 ‘순수함’을 애도하며 흘린 눈물이 땅에 스며든 곳에서 은방울꽃이 자라났다고도 전해집니다.
즉, 은방울꽃은 세상 속에서 사라진 순결함과 진심을 되찾고자 하는 간절함을 상징하는 꽃인 셈입니다.
▣ 프랑스의 5월 1일 – 은방울꽃의 날
은방울꽃은 프랑스에서 **‘행복의 꽃’**으로 특히 사랑받습니다.
매년 5월 1일이 되면, 프랑스 사람들은 소중한 이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하며 “당신에게 행복이 깃들길 바랍니다”라는 인사를 전합니다.
이 풍습은 1561년, 프랑스의 샤를 9세가 은방울꽃을 받은 것을 계기로 매년 5월 1일마다 귀족들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하도록 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5월 1일 하루만큼은 누구나 세금 없이 은방울꽃을 판매할 수 있는 특별한 날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국 곳곳에 작은 꽃다발이 넘쳐납니다.
이는 단순한 미풍양속을 넘어 행복을 나누는 전통, 그리고 감사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죠.
▣ 조용한 고백의 꽃
은방울꽃은 시들기 쉬운 꽃이지만, 꽃말은 ‘다시 찾은 행복’입니다.
이는 상처를 딛고 피어난 순수함, 혹은 잠시 멀어졌던 관계 속 다시 찾은 기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친구에게, 다시 돌아온 연인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전하기 좋은 꽃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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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약 (Peony)
꽃말: 수줍은 사랑, 부끄러움, 풍요, 자존심
▣ 부끄러워 도망친 여인, 꽃이 되다
작약은 ‘꽃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화려하고 우아한 꽃입니다.
그러나 겉모습과는 달리 그 꽃말은 ‘수줍음’입니다.
이 수줍음을 설명해주는 중국의 유명한 설화가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한겨울 궁궐 안의 모든 꽃들에게 “내일 아침 일제히 꽃을 피우라”는 명을 내립니다.
모든 꽃들은 무서운 황제의 명에 따라 억지로 피어났지만, 단 하나 작약만은 피지 않았습니다.
노한 무후는 작약을 궁 밖으로 내쫓고 불태워버렸습니다.
하지만 작약은 타지 않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꽃잎을 피워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작약을 ‘자존심 있는 꽃’, ‘강단 있는 꽃’으로 여기게 되었고, ‘수줍음 속에도 꺾이지 않는 자존심’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화는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고결함과 자기다움을 지킨 용기를 말합니다.
그 아름다움 속에 조용한 고집이 숨겨져 있다는 건, 작약을 더욱 깊이 있는 꽃으로 만들어줍니다.
▣ 동서양을 아우르는 부귀의 상징
중국에서는 작약을 ‘부귀화(富貴花)’라고 부르며 부와 명예, 번영을 상징합니다.
고전 회화나 자수 속에서 항상 등장하는 꽃이기도 하며, 사대부가의 정원에는 작약이 반드시 심겨 있을 정도로 길상의 꽃으로 여겨졌습니다.
서양에서도 작약은 결혼식 부케로 사랑받는 꽃입니다.
작약은 결혼을 앞둔 신부의 ‘설렘’과 ‘떨림’을 표현하는 꽃으로 자주 사용되며, 특히 영국 왕실에서는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꽃’으로 작약을 특별히 아꼈다고 전해집니다.
▣ 피었다가 금세 지는, 그러나 강렬한 인상
작약은 피어나는 순간이 무척 화려하고 향기로우며, 단시간에 만개합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져버리기도 해서 ‘덧없는 아름다움’ 혹은 ‘찰나의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죠.
그래서 작약을 사랑한 시인들이 많습니다.
조선시대의 학자들도 작약을 즐겨 노래했으며, 김소월의 시에서도 작약은 “볼을 붉히며 떠나는 여인”처럼 그려졌습니다.
그만큼 작약은 단지 예쁜 꽃이 아니라, 감정을 품은 얼굴, 혹은 부끄러움이라는 이름의 고백처럼 여겨졌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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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방울꽃과 작약 — 말없이 피는 사랑의 두 얼굴
은방울꽃과 작약은 서로 닮지 않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감정, 그러나 깊은 진심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은방울꽃은 조용히 전하는 “다시 행복해지고 싶어요”라는 소망,
작약은 말 못 하고 붉어지는 “사랑하고 있어요”라는 고백.
두 꽃은 말이 없어도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의 상징입니다.
그렇기에 5월이라는 깊어가는 봄날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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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하며
5월은 사랑을 다시 배우고,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은방울꽃처럼 작은 기쁨에 감사하고,
작약처럼 수줍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고백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계절이 당신의 마음에 향기로운 꽃 한 송이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은방울꽃처럼 잊을 수 없는 기쁨이자,
작약처럼 고백하고 싶은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을 거예요.